鏡湖十里路 경호로 가는 십리 길을隨月夜歸來 달빛 따라 밤에 돌아왔네尙有靑雲志 여전히 청운의 뜻 있으니尋常過釣臺 늘상 조대를 찾아본다네-오산유고(梧山遺稿)경호는 경양방죽이다.이용헌(李龍憲, 1851~1895 )의 본관은 함평이다. 자는 운오(雲五)이며 호는 오산(梧山)이다. 광주 출생이다.
馬車曉待板橋頭 말수레는 새벽에 판교 끝에서 기다리는데 于役關心孰與謀 행역(行役)을 우려하는 마음 누구와 도모할까暑去還愁尋舊襖 더위가 물러가 옛 두루마기 찾기를 근심하고雨來却怕作洪流 비가 오니 홍수가 될까 두려워하네-운람선생문집(雲藍先生文集)정봉현(鄭鳳鉉)은 구한말 시기 사람으로 노사 기정진의 문
서구 용두동 봉학마을에는 읍궁암泣弓巖이 있어요. 엄이재掩耳齎 뒤편에 있는 푸른 이끼가 낀 바위를 말합니다. 이 엄이재는 한말 유학자이자 깨어있는 지식인으로 평가받는 현와弦窩 고광선高光善(1855∼1934) 선생이 1905년 을사늑약이 강제로 체결되자 세상과의 인연을 끊고 봉황산鳳凰山에 들어가 은거하면서 후학을 양성
광주시 서구 용두동 산 79번지서구 용두동 봉학마을 깊숙한 꽤 높은 곳 봉황산 가파른 중턱에 봉산사가 있었다. 이곳은 을사늑약 이후 어지러운 세상에 그만 ‘귀를 닫아버리고[掩耳]’ 싶었다고 해서 ‘가리다, 숨기다’의 엄(掩)자를 쓴 엄이재 띠집을 짓고 후학을 가르친 현와 고광선이 지낸 곳이다.주변 숲속에 읍궁암
광주 쌍유리雙柳里에서 출생한 농은農隱 이엽李爗(1729~1788)의 은거터 농은정農隱亭이 있었다. 서석산 서쪽 구림지역에 농사를 감독하기 위해 지었으며 자신이 농은당기(農隱亭記)를 직접 남겼다.이엽의 본관은 전의(全義). 자는 시회(時晦), 호는 농은(農隱). 아버지는 이상규李相奎, 할아버지는 이윤李潤이다. 이엽은 176
서구 금화로 23(금호동)『광주읍지』(1924)에는 주의 서쪽 20리 거리에 일신당日新堂이 있었다. 뒤로는 얕은 산이 둘러싼 고즈넉한 만호마을이었다. 개촌 때는 만호곡晩湖谷이라 불렀고 정자는 상당히 오래전에 지어졌다. 1827년 이 마을에 살던 당시의 의식있는 지식인 3성씨인 음성박씨 일산日山 박호언朴浩彦, 순천박씨